고등학교 시절 첫 서울 나들이를 한 뒤 그 거대함에 놀란 탓인지 일주일간 앓은 적이 있었 고, 난 그것을 서울멀미라 이름 지었었다. 그후 서울을 생각하면 늘 커다란 괴물이 떠올랐 다. 서울멀미는 서울에 올라갈 일들이 잦아지면서 많이 줄어들었지만 서울을 떠올리면 서울 멀미가 함께 떠올랐다. 하지만 올해 들어 우리가족은 서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에게 멀미가 떠오르는 유쾌하지 않은 곳이라 하여도 정치, 경제를 비롯한 우리나라 모든 문화의 중심이기 때문에 이제 초등학생이 된 현석이와 다솜이에게 그 거대한 서울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던 여행을 실행하게 된 것은 다솜이가 한 카드사에서 주최한 청소년 백일장에서 입상하여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였다. 마침 시상식이 있는 날이 개천절 다음날이어서 개천절을 포함하여 이틀동안의 서울여행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서울의 거대함은 이틀동안의 일정으로 갈곳을 정하는 데도 여지없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갈 만한 곳도, 가야할 곳도 너무 많았다. 갈곳을 뽑아 나열해 보니 그곳들을 다 둘러보려면 일주일은 머물러야 될 것 같았다. 그 큰 거대함만큼 사람도 많고 볼 곳도, 배울 거리도 많은 곳이 서울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 했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난 뒤 끙끙거리며 꾸민 여행 일정은 남산과 한강, 그리고 창덕궁과 코엑스의 아쿠아리움, 국립서울과학관이었다. 남산과 한강은 서울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상징인 이유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곳이었다. 그리고 내가 서울을 수십 번 오가며 한강을 넘었지만 막상 강변까지 내려가서 강물을 본 기억은 전혀 없었고, 남산을 다녀오긴 했지만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산길을 걸어 본적이 없어 직접 강물도 보고, 남산도 걷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꼭 가야할 곳으로 정했다.

창덕궁을 여행지에 포함시킨 것은 조선의 역사를 보여주는 여러 궁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어서 현석이와 다솜이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고, 아쿠아리움을 택한 것은 여러 여행 요소 중 아이들이 좋아 할만한 곳을 포함시킬 생각이었는데 적당한 곳을 찾아보니 롯데월드, 63빌딩, 아쿠아리움이 그 대표적인 곳이었다. 롯데월드는 가족이 함께 다녀온 적이 있었고, 63빌딩은 현석이가 다녀온 적이 있어 아쿠아리움으로 정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한곳을 더 포함시킨 곳이 서울국립과학관인데,“인체의 신비 특별전”이 열리는 기간이어서 찾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여행은 계획한 일정대로 잘 진행되었고, 그리고 그 여행은 우리가족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현석이와 다솜이에게는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상어와 거북이의 멋진 모습이 인상깊게 남았 다. 시청 앞 삼성본관 옆의 분수대에서 한참을 뛰어 논 재미난 기억도 좋아했다. 버스와 지 하철을 타고 다니고 서울타워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서울이란 도시가 과연 얼마나 큰지 엿본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내도 여행으로는 처음인 서울의 느낌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해지는 한강의 풍경에 탄성이었고, 특히 한강변을 달리는 자전거를 부러 워했으며 다음에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 서울에 오자고 했다. 물론 나에게도 가족 이 함께 한 아름다운 여행이었고,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여행이었다. 특히 거대 함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느꼈던 서울멀미를 낫게 한 여행이기도 했다.

아쿠아리움을 둘러보고 서울의 모습을 잘 살펴 보고싶다고 올라간 서울타워에서도 첫 느낌 은 괴물같은 거대함이었었다. 다시 서울멀미를 느끼는 듯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청와대도 찾고 명동성당도 찾으며 서울의 모습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을 때 문득 서울을 둘러싼 산들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라도 볼 수 있는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부드러움이 바로 눈앞의 남산에도 펼쳐져 있었다. “서울의 산에도 저런 부드러움이 있구나…….” 이런 생각은 남산에서 흘러내린 부드러운 선을 따라 움직이던 내 눈길이 그 선의 끝자락에 누워있는 한강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을 다니며 산을 넘고, 물길을 건널 때마다 우리나라의 산과 강의 모습들이 참 부드러운 선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남산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도, 멀리보이는 서울의 산들도 부드러움이었다.

그렇게 느낀 부드러움 때문인지 건물을 살펴보며 서울타워를 세 번째 돌 때는 문득 서울의 거부감이 가벼워졌다는 생각을 했다. 타워에서 내려와 백범광장으로 향하면서 울창한 나뭇 잎 틈으로 서울의 모습이 조금씩 보일 때도 서울의 모습이 낮설지 않았다. 그 틈으로 보이는 서울이 내가 사는 동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백범광장에서 나무그늘에 누워 쉬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도 그동안 특별한 사람들로만 보아왔던 서울특별시민이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로 보였다. 그리고 신발과 양발을 벗고 맨발공원을 걸으면서는 우리가족도 어느덧 그 보통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

남산에 올라 바라본 서울의 모습에서 느낀 부드러움 때문일까? 해질 무렵 찾은 한강에서는 서울이 좀더 친근한 모습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를 즐기는 여유로운 얼굴빛에서,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과 연인들의 웃음에서 서울은 그리 낮설은 도시가 아니었다. 한때 우리는 한강을 아름답지 못하다고 했다. 한강에는 문화가 없다고, 한강에는 낭만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 한강은 낭만이고 아름다움이다. 노을이 비치는 양화대교의 교각도, 불빛에 반짝이며 울렁거리는 한강의 물결들도 모두 아름다움이다. 우리가족은 그 아름다움 속에서 유람선도 타며 즐거워했고, 바람이 시원한 한강변을 산책하기도 했다. 물결이 출렁거리는 한강을 한참이나 바라보기도 하였다.

서울멀미가 다 사라진 것 같다는 것을 느낀 것은 여행 이틀째 창덕궁에서였다. 세계문화유 산인 창덕궁에서 인정문을 지나 인정전으로 향하다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잠시 전율했다. 내 눈을 채운 것은 부드러운 궁궐의 선들이 서울의 도심이 만들어낸 딱딱함과 건조함을 이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참동안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부드러운 선을 바라보았다. 그 선은 남산의 능선과 꼭 같았으며, 남산을 돌아 흐르는 한 강의 선들과도 꼭 닮아 있었다. “맞아... 사람은 자연을 닮는다 했어…….” 우리의 산과 강 이 부드러운 모습이기에 우리의 모습도 그 부드러운 선을 닮았을 것이고, 서울에도 그런 부 드러움이 있었다. 서울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도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거대함이 지만 그 거대함 곳곳에 부드러운 산과 강이 자리를 잡아 거대함의 거부감을 허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인정문의 부드러운 선에서 고개를 조금 더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름다운 서울의 하늘이 보였다. 문득 내 기억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서울의 거부감이 조금씩 허물어져 내 렸다. 앞으로는 서울멀미가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날 오후 세종문화회관의 시상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서울의 여행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우리가족은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났다. 서울역에서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어느 외국인이 썼던 한국여행기가 생각이 났다. 서울의 기억들이 모두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 한가지 때문에 한국을 다시 찾고 싶다고 했었다. 서울을 괴물로 생각하며 서울멀미를 앓았던 지난 기억도 잠시 떠올랐다. 거대한 서울, 가끔은 그 거대함이 괴물처럼 느껴지지만 서울 곳곳에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주는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그런 아름다움이 우리가 너무 흔하게 보아온 한강과 남산에도 환한 꽃으로 피어 있었다. 우리가족이 탄 기차는 햇살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한강을 넘고 있었다